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조지프 퍼싱 (문단 편집) === 제1차 세계대전 === [[1917년]] [[4월 6일]] [[치머만 전보]]를 계기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퍼싱 [[소장(계급)|소장]]은 [[중장]]을 건너뛰고 [[대장(계급)|대장]]으로 진급하여 27,000명 규모의 [[미국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 본토에 파견된다. 물론 파병 초부터 미군이 지대한 역할은 할 수 없었고 1918년 7월에 돼서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미군은 압도적인 육군, 해병대 지상군의 병력비로 [[독일 제국]]을 패망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 하였다. 전쟁 기간 중 퍼싱 대장은 볼품없고 경험도 부족한 1개 군단 수준의 파견군에서 급격히 규모가 불어나 약 3개 야전군 규모[* 세 번째 야전군은 종전 후 창설됨.]로 재편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국 원정군을 총지휘하였다. 아미앵, 아르곤 숲, [[생 미이엘 공세|생 미이엘]], 벨로 우드 등 여러 곳에서 [[독일 제국군]]을 격파하여 그 공로로 종전 후, [[율리시스 S. 그랜트]] 대장, [[윌리엄 테쿰세 셔먼]] 대장, [[필립 셰리든]] 대장[* [[남북전쟁]]의 영웅 그랜트, 셔먼, 셰리든 세 대장은 별 4개의 대장 계급장을 패용했지만 3성장군이 육군 선임 장교 (참모총장 직제 설립 이전의 미 육군 최선임 보직) 이던 시절이라 이들의 실질적인 대우 및 의전은 오늘날 원수에 가깝다.] 이후 최초의 원수 (General of the Armies) 계급을 받는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정식으로 5성 장군 계급인 원수(General of the '''Army''', 퍼싱의 계급인 General of the '''Armies'''가 아니다) 계급이 생겼고 이 때 퍼싱은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에 퍼싱의 계급을 어디에 맞춰줘야 하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미군은 "퍼싱이 원수보다 더 높은 계급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연공과 진급 일자로 보아 그 계급은 다른 원수 계급에 선임한다"고 해석하면서 퍼싱은 사실상 6성 장군 대우를 받았고 이 문제는 나중에 워싱턴에게 대원수 계급을 추서하는 과정에서 해결된다.] 그는 전쟁 중에 그가 본 영국과 프랑스의 [[Mk 시리즈|Mk 전차]], [[생샤몽|생샤몽 전차]] 같은 [[전차]]에 영감을 받아 [[르노 FT]] 전차들을 사들여 최초의 미 육군 기갑부대를 창설하였고 지금의 미국 기갑의 기틀을 마련했다. 휘하 기갑 부대장으로 그 유명한 [[조지 S 패튼]]을 임명하였고, 원정군 보급 및 작전참모로 [[조지 마셜]], [[레슬리 맥네어]]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래의 미 육군을 이끌 인재들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이는 퍼싱이 인력 운영에서도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더글러스 맥아더]] 역시 1차대전 당시 퍼싱의 휘하 장교로 원정군 생활을 했으나, 퍼싱과 작전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좁히지 못해 시시때때로 충돌이 있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맥아더가 계급에서 한참 위였던 퍼싱의 작전안을 감히 뒤집을 수는 없었지만, 맥아더와 퍼싱의 대립은 퍼싱의 후계자인 마셜과의 경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